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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잃었던 용기를 되찾고 싶을 때,

샘터 ㅣ 2021년 8월 발행


글·그림 정재경(식물에세이스트)


유치원에 다니던 아들은 몸이 작아 품에 폭 안겼다. 양반다리로 앉은 엄마 무릎에 엉덩이를 밀어 넣고 가슴팍에 등을 기대어 앉으면 정수리가 겨우 턱에 닿았던 조그마한 아들···. 우리의 시선이 같은 곳을 향하던 시기였다. 그렇게 우린 몸을 포개고 거실의 좌식 탁자에 앉아 색연필로 색칠 공부를 하거나 동화책을 읽었다.

그날은 그림책 《아기 힘이 세졌어요》를 읽는 중이었다. 밥을 먹기 싫어하는 몸이 약한 아가에게 아보카도를 먹였더니 힘이 세져서 집에 들어온 도둑을 물리치고, 피아노도 번쩍 들어 옮기며, 자동차를 밀어주기도 했다는 이야기였다. 호기심 왕성한 아들이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아보카도가 뭐야, 엄마?"

"과일인데, 껍질이 초록색이고 주먹만 하게 생겼어. 백화점에 가면 있을 거야."

"그럼 백화점에 가자."

"그래, 다음에 백화점에 아보카도를 사보자."

어느 날, 백화점 마켓에서 장을 보는데 아들이 그날 나눴던 대화 내용을 기억해내고는 아보카도를 두 개나 사자고 졸랐다. 10년 전에는 아보카도 한 알에 6천원으로 두 알이면 수박 한 통 값이었다. 주먹만 한 아보카도와 사람 머리만 한 수박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먹어보고 맛있으면 또 사자고 겨우 설득해 일단 한 개만 장바구니에 넣었다. 집에 오자마자 아보카도를 먹어보자고 보채는 아들에게 하나 깎아서 주니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입에 넣었다.

"이걸 먹으면 정말로 힘이 세질까?"

하지만 아보카도를 씹을수록 점점 아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빠졌다. 결국 아이는 아무 맛이 없다며 포크를 내려놓았다. 이런 경우 남은 음식은 엄마 차지가 되는 법. 아들의 말은 사실이었다. 아보카도는 정말 아무 맛이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버리기엔 지구에 미안해 그냥 꿀꺽 삼켰다. 이날은 마지못해 해치웠지만 심심한 그 맛이 가끔 생각났다. 그 사이 아보카도는 슈퍼푸드로 알려지며 위상이 올라가 마트에서도, 동네 과일가게에서도 쉽게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요즘엔 아보카도를 주식처럼 먹는다. 깍두기처럼 썰어 와사비 김에 명란과 함께 싸 먹기도 하고, 밥과 달걀 프라이와 같이 버무려 간장과 참기름을 둘러 먹기도 하고, 핑크 소금을 뿌리고 꿀 한 티스푼을 넣어 디저트로 먹기도 한다. 아무 맛이 나지 않는다는 건,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는 장점도 되었다.



그림으로 기록하는 성장일기

자주 먹다 보니 아보카도의  씨앗이 많이 나왔다. 처음엔 그냥 버렸지만 여러 식물과 함께 살다 보니 씨앗이 점점 생명체로 보였다. 탁구공만큼 큰 아보카도 씨앗을 보면서 틀림없이 영양소를 많이 품었을 것이라 예상했다. '아보카도 나무는 어떻게 싹을 틔우고 어떤 모양의 잎을 갖고 자라는 걸까?' 사진이나 그림 자료를 찾아 봤지만 직접 내 눈으로 보고 싶었다. 실물이 주는 느낌이 궁금했다.

옥상 텃밭에 씨앗을 몇 개 심어 두고 잊었다. 여름이 다가도록 꿈쩍 않기에 파종한 사실을 깜빡했던 것이다. 그러다 가을이 되어 텃밭을 정리하는데 황금빛이 도는, 연두색으로 빛나는 잎이 두 개 보였다. 아보카도 씨앗을 심은 일은 까맣게 잊고 어떤 잡초의 잎이 저렇게 큰 지 참 용감하기도 하다 싶었따. 하지만 찬찬히 훑어볼수록 잡초 특유의 스산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맑고 명랑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제야 아보카도 씨앗을 심어둔 게 기억나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아보카도의 새 잎 모양이 맞았다. 중앙아메리카와 서인도제도가 원산지인 아보카도는 바깥에 두면 월동이 되지 않으므로 뿌리를 가로, 세로, 높이 30cm인 정육면체 주사위 모양으로 잘라 화분에 옮겨 심었다. 그렇게 집안으로 데리고 들어온 아보카도 나무를 볼 때마다 고개를 빼죽 내밀고 밝고 싱싱하게 빛나던 싱싱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무는 무럭무럭 자라 옆 가지가 생겼다. 양쪽으로 가지를 뻗어 잎을 탁 떨어뜨린 모습이 고개를 숙이고 다음 동작을 준비하는 무용수의 자태 같다. 이렇게 인상적인 식물의 모습을 나는 보통 사진으로 찍어 기록하는데 아무래도 사진은 눈으로 보는 것만 못해 성에 차지 않을 때가 많다. 어떻게 하면 나무의 예쁜 모습을 생생히 기록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그림으로 그려보면 어떨까 궁금했다. 마지막으로 붓을 잡은 지 20년도 넘었지만 아보카도 나무의 고유한 모양이 용기를 내게 했다. 기어이 3H 연필을 들어 신중히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붓에 물감을 묻혀 최대한 실물과 비슷하게 색을 칠했다. 마음처럼 그려지지 않아 속상해지는 순간이면 나무가 에너지를 복둗우는 소리가 들렸다.

"선을 살려야지. 질질 끌면 안 돼. 그렇지, 그렇게!"

그림을 그리는 동안 아보카도의 응원과 함께 어린 시절 미술학원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나무의 응원 덕분이었을까. 내 손과 눈의 협응력은 빠르게 회복되어 점점 더 보이는 것에 가깝게 그려졌다. 아보카도 나무를 그리고 나자 설탕을 녹인 따뜻한 우유를 마신 듯한 달콤한 포만감이 느껴졌다. 여름을 맞은 아보카도 나무는 그림을 완성하는 사이 더 자랐다. 앞으로 녀석의 잎은 점점 더 무성해지고, 키도 커질 것이다. 그렇게 무럭무럭 성장하는 나무를 나는 계속 그려주고 싶을 것이다.


*아보카도 나무 관리법

- 아보카도 씨앗을 흙에 심는다.

- 따뜻한 창가에 두고 흙이 건조한 느낌이 들 때마다 물을 한 번씩 준다.

- 뿌리가 잘 자라므로 토심을 깊게 준다.



History



2021   브랜드 크루시 론칭 

           상호명 '초록생활'로 변경 

           책 《우리 집은 식물원》출간



2020   에세이 테라피 〈일간정재경〉프로젝트 (2020.10~)

           정재경 대표 자아성장 큐레이션 플랫폼 '밑미' 리추얼 메이커 활동 (2020.9~)

           책 《초록이 가득한 하루를 보냅니다》출간



2018   책《우리 집이 숲이 된다면》출간

           더리빙팩토리 Milk & Mint 시리즈 출시



2017   더리빙팩토리 California 시리즈 출시



2016   더리빙팩토리 Forest 시리즈 출시

           리빙센스 리빙마켓 주최



2015   더리빙팩토리 Glam Pink 시리즈 출시



2014   인스타일 선정, 대한민국 주목할 만한 리빙 브랜드 24 선정



2013   더리빙팩토리 ONE2 시리즈 출시

           성남시 최초 디자인협동조합 '몽당' 설립



2008   복합문화공간 카페 '세컨드팩토리' 운영

           더리빙팩토리 Retro 시리즈 출시



2004   생활용품 디자인 회사 더리빙팩토리 설립